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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준호 기자 :

서기 1597년 거제도 7천 수로에서 원균이 전사하자 다시 3도수군 통제사로 기용된 이순신 장군이 오직 낡은 배 12척으로 적의 주력 130여척을 맞아 싸워 대승을 거둔 명량대첩의 현장 울돌목입니다. 잔잔하기만 한 남해바다 다른 곳과는 달리 1년 내내 거센 물살이 위도는 이곳 울돌목에서 지금 잃어버린 승리의 역사를 되찾기 위한 탐사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바로 충무공의 후예들인 해군 탐사단의 거북선 발굴 작업입니다.


최종규 중사 (해군 충무공 해전유물탐사단) :

이 장비가 싸이드스캔소나라고 하는 장비인데 해전면 상부에 있는 이상체를 찾기 위해서 사용하는 장비입니다. 그리고 이 장비는 해저지층 38기라 하는데 써브틈 퍼팔라는 장비입니다. 해저면 하구에 있는 이상체를 탐사하는 장비이고 여기에 있는 장비하고 지필 스크린터는 보충되는 자료를 얻기 위해서 사용하는 겁니다. 이 모든 장비가 거북선을 찾기 위해서 사용되고 있는 최첨단 장비입니다.


윤준호 기자 :

이날의 탐사작업은 유난히 까다로왔습니다. 이미 남해바다 곳곳에 빽빽히 들어찬 양식장 때문입니다. 이날도 거센 조류에 배가 밀려 싸이드스캔소나 장비가 양식장의 밧줄에 걸리는 사고를 만났습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니어서 곧 장비를 고쳐 탐사작업은 계속 됐습니다. 드디어 싸이드스캔소나에 이상체가 발견 됐습니다. 좌표로 확인해 25키로그템의 쇠추를 매단 후이를 투하하고 조류가 다소 잦아 들기를 기다려 수중 작업조가 투입됩니다. 맑은 남해바다이지만 바닷 속의 시계는 20센치미터 정도에 불과해 손으로 더듬어 이상체를 확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1시간여의 힘든 작업 끝에 건져 올려진 것은 기대하던 유물이 아니라 조선시대 것으로 보이는 깨어진 도자기였습니다. 지금으로부터 400년 전인 1592 년 4월 14일, 임진왜란 을 일으킨 일본은 블과 20일 만인 5월 3일 서울에 입성하지만 불과 사흘전 서울을 버리고 피난길에 오른 선조 일행도 쫓지 않은 채 16일간을 서울에서 머물다 5월 19일이 돼서야 다시 북으로 진격해 6월 15일 평양을 함락시킨 뒤에도 계속 평양에 머물려 있 다가 조, 명 연합군에게 패배하고 밥니다. 파죽지세로 단 한번의 패배도 겪지 않고 서울과 평양을 연이어 함락시킬 정도의 막강 전력을 갖춘 일본이 왜 16일간이라는 금쪽같은 시간을 서울에 머물면서 허비했는지 그리고 왜 결국 평양에서 발목이 묶여 패배하고 마는지, 임란 승패의 결정적 분기점이 된 여기에 힘들여 거북선을 찾는 이유가 있습니다. 즉 일본은 서울과 평양에서 지체하면서 서해를 통해서 떨어진 탄약과 장비의 군량 등이 도달하기를 기다렸지만 거북선을 앞세워 재해권을 완전히 틀어 쥔 이순신의 조선 수군에게 육포와 당포 등에서 백여 척 이상의 보급선이 깨지고 절대적인 생명선인 해상 보급로를 완벽하게 차단당하면서 결국 더 이상의 전쟁을 포기하게 된 것입니다. 일찌기 임란을 예견하고 당시 최강의 돌격장항인 거북선을 앞세워 1대 10의 싸움을 승리로 이끝 대 전략가 이순신. 노일전쟁의 승리로 일본에서 군신으로 추앙받고 있는 일본 연합 함대사령관 도고 해야찌로도 가장 존경하는 군인이 조선의 이순신이라고 말할 정도의 장군의 위대함이 여기 있는 것이고 거북선의 발굴 북원을 통해서 장군의 위대함과 임란 승리의 비밀을 밝혀보는데 바로 거북선 추적의 목적이 있는 것입니다. 지난 89년 발족된 뒤 91년부터 거북선의 잔해가 묻혀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지역을 찾아 탐사작업을 계속해 온 해군 충무공 해전유물탐사단은 현재까지 주요 해전지역인 당항포와 안골포, 거제도, 한산도, 노량을 포함해 진해와 여수항에 이르기까지 전체 매몰 가능지역의 40%에 해당하는 45평방키로미터에 대해 탐사를 실시해서 이상 반응을 보인 56군데 중 17군데에서 유물을 인양했습니다. 임란 때 쓰던 것으로 판단되는 화살촉과 철환, 조선시대 도자기 등 여러 점의 유물과 여러 선체를 확인했지만 거북선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판명됐습니다. 그러다 드디어 지난해 여름 통영군 한산도 문어포 앞바다 해저에서 거북선에 장착됐던 것이 분명한 별황자총통을 발굴해내는 개가를 올렸습니다. 국보 274호로 지정된 이 별황자총통에는 귀함황자경 적선, 일사적선필수자, 즉 거북선의 황자총통이 적선을 놀라게 하고 단 한발에 반드시 적선을 격침 시킨다는 결의에 찬 칠언절규와 서기 1596년을 나타내는 중국영의 만력병신이라는 제작 연대가 분명하게 용각돼 있어 과연 임란 당시에 거북선이 있었느냐는 유무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했을 뿐 아니라 아득하게만 느껴지던 거북선이 신비로움을 벗고 우리 곁에 선뜻 다가서게 했습니다.


황동환 (해군 충무공 해전유물탐사단장) :

거북선의 존재 사실을 중명할 수 있는 유일한 실물자료다 하는데에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따라서 국가 보물 제 274호로 지정된 것입니다. 두 번 째는 거북선을 발굴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확신을 주었다는데 큰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윤준호 기자 :

그러나 아직까지 거북선의 잔해로 추정되는 유물은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국내 학계에서는 그동안 몇 차례 거북선의 고증작업이 있었습니다. 국내 학계는 임란 2백년 뒤인 1795년 정조대왕의 명에 의해 편찬된 이 충무공 전서에 실려 있는 통제형 거북선과 전라 좌수형 거북선의 그림과 최소 치수를 바탕으로 고증작업에 나서 현충사 거북선과 해군사관학교 거북선 그리고 독립기념관 거북선 등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지금까지 복원된 거북선의 경우 너무 무거워 속력을 잘 낼 수 없고 노꾼과 포꾼이 섞이는 등 구조적으로 풀리지 않는 문제점과 함께 장신기용의 용머리 등이 장계 내용과 전혀 다른 것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즉 지금의 어떤 모습도 거북선의 본 모습이 아닐 것으로 추측되기 때문에 충무공 해전유물탐사단의 거북선 발굴에 거는 기대가 더 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기대처럼 거북선의 잔해는 쉽게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당시 남해 바다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왜선과 탄혹선의 잔해조차도 아직 끌어올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결국 거북선의 잔해는 영영 찾을 수 없는 것이 아니냐는 국민의 의구심과 무관심은 빈약한 예산지원 속에서 오로지 사명감만으로 탐사작업을 계속하고 있는 탐사단에게 망망대해의 외로움보다도 더욱 견디기 힘든 당혹감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이 임란 발발 400년을 기념해 당시 일본의 출병기지였던 사가현 나고야성터에 대규모 박물관을 세워 임란을 재조명하고 있는 것과 큰 대조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안 나왔다고 해서 거북선의 잔해가 없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3년 가까이 조사했지만 아직도 매장 가능지역의 40% 정도만을 조사했을 뿐입니다. 몇 년째 묵묵히 바다를 상대로 발굴 작업을 해나가는 탐사단은 드넓은 바다 한 귀퉁이에서 거북선의 잔해를 찾는다는 것 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이 충무공 해전유물 발굴사업은 우리 국가사업이자 우리 국민의 여망 사업입니다. 따라서 기존 가지고 있는 장비와 또 우리가 어려운 지역을 탐사하기 위한 장비 보완, 개발해 가면서 지속적이고 과학적으로 탐사를 진행해 나간다면은 우리가 찾고자 하는 거북선 또는 탄혹선은 우리 손에 의해서 기필코 인양되리라 판단하고 있습니다.”

거북선 찾기는 단지 그 가능성이 적다고 해서 결코 중단될 수 없는 우리들의 임무입니다. 왜냐하면 자랑스런 민족의 승리의 역사를 되찾아 후세에게 이어줘야 하는 것은 바로 우리들의 책무이기 때문입니다.